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단짝인 친구를 만나러 나갔을 뿐인 제 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금 여러분 주위에 있는 보통의 청춘들과 같았던 우리의 아들, 딸들은
좋은 사람들과 동네 축제에서 만나 그저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나누고,
각자의 치열한 삶들을 위로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뿐인 딸을 잃은 저는 사는 의미를 잃었고, 인생의 빛을 잃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이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의지로는 메울 수 없는
깊은 상처가 생겼습니다
사진 속 아이에게 잘 버티겠다고 매일 다짐하지만
앞으로 어찌 살아가야 할지, 아니 살아나갈 수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지 않는 딸을 겨우 안아보게 되었을 때도,
그 끔찍한 날로부터 100일 가까이 지난 지금도,
제 딸아이가 귀한 목숨을 잃게 된 이유도, 그 과정도 알 수가 없습니다
쪽잠을 자고 깰 때마다 아이의 마지막 얼굴이 떠올라
심장이 저려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하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어
일터 한쪽 구석에 쭈그려 앉아 가슴을 움켜쥡니다
밥 먹는 것이 미안해서, 따뜻한 집에 누운 것이 미안해서,
딸이 가고 없는데도 엄마인 제가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죄스러워
눈을 뜨고 있는 동안 제 마음을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때에는 이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아 다시 아이한테 전화를 하고,
카톡을 보내봅니다
상상만 해도 슬플 일을 저희는 온 마음과 몸으로 겪고 있습니다
가만히 어깨에 얹어주는 손길에, 얼마나 힘드냐 그 말 한마디에
죽지 못해 사는 제 마음에 온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부디 저희 아이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자신들만의 세상을 지키느라 사실을 묻고, 외면하는 자들이
저희 아이들의 이야기를 시간 속에 묻으려 해도
여러분들께서 우리 아이들을 기억해주신다면 언젠가는 저희가 가슴에 품은
이 의문들이 풀리고,
자식을 잃은 어미지만 지옥 같은 세월을 견디고 있는 것이 그래도 의미가
있었구나 하는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부디 저희 아이들을, 제 딸아이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기억의 힘을 보여 주십시오
그렇게 기억으로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저는, 저희들은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아 보겠습니다 무엇이든 해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를 보내고나서 제 딸아이에게 썼던 편지입니다 (한겨레기사에 첨부)
다시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우리 찌니 생각이 너무 많이
나서, 온종일 니 생각뿐 이었는데도 또 너무 보고 싶어져서,
안아보고 싶어져서 힘들어진다
보고 싶고, 보고 싶은 내 딸 유진아
너랑 헤어진 지 한 달 되던 날
서울에 종일 비가 와서 그랬는지 O석이가 많이 힘들었나봐
(어머님 서울은 하루 종일 비가 와요 비가 와서 그런지 한없이 우울해지고
평소보다 더 유진이가 보고 싶어서 힘드네요
너무 힘들 때가 있는데 어떻게 견뎌야 할까요)
이렇게 톡을 보냈더라
나도 너한테 다녀오면서 비가 오길래 우리 찌니가 낯선 곳에서 오늘 밤,
혼자 괜찮을까 많이 걱정했는데,
O석이도 비가 오니 더 힘들었나봐
엄마가 기운을 막 짜내서 그 녀석을 다독였다
서로를 보며 애틋함을 배우고, 서로에게 인생의 경유지가 아닌 목적지가
되고 싶었던 두 사람,
이리 헤어진 두 사람의 인연이 안타까워 또 눈물이 났다
그래도 엄마가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고 많이 달래줬어
우리 찌니가 걱정 덜 하게...
너 대신 O석이가 잘 견디도록,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께
유진아 너무 걱정하지마
너를 잃고 세상을 잃은 O석이도,
단 하나뿐인 딸을 잃고 심장을 잃은 아빠도,
너를 딸같이 키우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저 울기만 하시는 두 분도 내가 지킬게
유진이 만나러 곧 가실 거라고 우시는 할머니도 내가 지킬게
그 날 니 손을 잡고 있다 너무나 황당하게 15년지기 너를 잃은 O니도,
늘 너를 웃게 하고, 니가 웃게 하던 O빈언니도,
너와 모든 소소한 일상을 나누던 O우도,
니 생각을 하며 울고, 잠 못 들고 있는 그 아이들도 엄마가 안아줄게
다 녹아내린 내 심장을 부여잡고서라도 견뎌내며 그 모두를 지킬게
아무리 힘들어도, 죽고싶을만큼 힘들어도 너를 위해 견딜거야
오늘 이렇게 바람이 부는데 넌 괜찮은지 걱정이 되어 또 잠을 설친다
보고싶다, 사랑한다
그저 한 번만 더 우리 딸을 안고 너무 열심히 잘 살았다고,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구나
내 새끼, 아깝고 아까운 우리 딸 유진, 불리기 원했던 이름 예술가 Aki
엄마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너를 그리워하고, 마침내 너한테 갈 수 있는 그 날이 오면
그동안 너무 보고 싶었다고 반갑게 얘기할 거야
너한테 가는 날이 너무 멀게 느껴지지 않게 세월이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
이제는 내일이라는 말이, 미래라는 말이 가장 두려운 말이 되었지만
하룻밤을 견디고, 일주일을 버티고, 한 달을 살아내면서
너한테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그 하루하루를 보내볼게
내 새끼, 우리 딸 진아 엄마 걱정도 하지마
엄마 친구들이 우리 딸을 엄마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칭찬했잖아
엄마도 너처럼 씩씩하고 용감한 거 알지? 잘 견딜게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내 목숨을 버려서라도 너를 구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미치겠지만
그래도 너를 사랑한 모두를 위해 잘 견디다 갈게
내 새끼, 우리 딸 유진아
늘 좋은 우리 딸 유진, 편히 쉬고 있어다오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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