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시진 할아버님은 백하 김대락 선생님의 후손으로
삼천석꾼 집안이라고 불릴 정도로 권세와 재력이 대단하였으나,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는 이 재산을 전부 처분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그 덕에 할아버님은 평생을
기초생활 수급자로 사시면서도
아버지 서훈을 위해 분투하셨습니다.
그나마도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연을 접하고, 너무나 안타까워 할아버님을 도왔습니다.
올해 초 전화를 걸어도 연락이 계속 닿지 않자 너무 걱정되어
겨울 용품과 녹용, 홍삼 등을 들고 할아버지 댁으로 방문하였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할아버님 댁의 문은 열리지 않고,
그렇게 물품을 대문 앞에 두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3일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저 혹시 000씨인가요?”
“네”
“저희 대문 앞에 물품이 놓여 있길래요.”
김시진 할아버님께서는 끝내 아버지의 서훈을 인정받지 못한 채
그렇게 홀로 쓸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님께서는 생전 제게 해주시던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독립운동가 집안이네 어쩌네 하지만 우리 집은
어르신들의 묘소 하나 없는 망한 집안이야.”라며
명절 때마다 쓸쓸하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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