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대표와 김지선씨는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도중 만났다. 당시 김지선씨는 인천지역해고노동자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다. 그때는 나이가 두 살 연상이고 노동운동가로서의 경력도 오래된 김지선씨가 노회찬 대표보다 훨씬 유명했다. 김지선씨를 마음에 둔 노회찬 대표가 먼저 프러포즈를 했지만 여지없이 거절당했다. 김지선씨는 노동운동의 길이 워낙 힘들었기에 연애나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여성이 결혼과 동시에 노동운동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지선씨에게 배우자는 함께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동지여야 했다.
다음 해 노회찬 대표는 선거에 나선 동료를 도와주러 간 자리에서 김지선씨를 다시 만났고, 다시 한번 프러포즈를 했다. 이번에는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 권을 보내며 표지 안쪽에 ‘당신의 결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프러포즈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라는 연서를 보내 김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만나 1988년 가족만 모여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노 대표가 33세, 김지선씨가 35세였다. 이들 부부의 신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결혼 10개월 만에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노 대표가 붙잡히면서 2년 6개월 동안 투옥 생활을 했다. 김씨는 여성의전화에서 일을 하고 책 대여점을 운영하며 홀로 살림을 꾸렸다. 보통 사람들이 맛보는 신혼생활의 즐거움은 꿈도 못 꿨다.
노회찬 대표가 출감한 이후에도 경제적 형편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2004년 17대 국회에 입성하기 전까지 노 대표는 딱 한 번 80만원을 집으로 가져온 적이 있을 뿐 대부분 많아야 50만원 정도를 살림에 보탰다고 한다. 아파트단지 내 재활용품을 모아놓은 곳에서 주워온 옷으로 의복 문제를 해결했을 정도로 어려운 살림이었다. 노회찬 대표가 국회의원 월급 180만원(당시 민주노동당은 소속 정당 국회의원의 월급을 노동자 평균 임금인 180만원으로 한정했다)을 꼬박꼬박 집으로 가져오면서 김지선씨는 그 동안 하지 못했던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비정규 학교에서 중등 생활을 보내 공식적인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었다.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2004년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입학해 2008년 졸업했다. 2009년에는 복수 전공을 살려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노회찬 대표와 김지선씨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녀를 원하지 않는 딩크족은 아니다. 당시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신혼 초 투옥 생활을 겪은 탓인지 부부는 노력을 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입양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까다로운 입양 조건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재정 상태가 나빠 입양을 거절 당했다. 이런 이들 부부 사정을 모르고 ‘노회찬 의원 딸이 경희대 재학 중인데 특혜를 받아 이화여대에 편입 했다’는 가짜 뉴스가 돌은 적이 있다. 이에 노 의원이 날린 트윗이 마음을 에리게 한다.
"어떤 분들이 카톡 등에서 열심히 돌리고 있는 유언비어 입니다. 저는 아들도 딸도 없는 무자식 입니다. 이런 유언비어대로, 욕먹는 딸이라도 하나 있다면 저희 부부는 더 이상 소원이 없겠습니다"
#김지선 #노회찬 #부부와 그들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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