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2

짧은 수필 ....... 우리 외할아버지




언젠가 외갓집에 놀러갔다가
배부르게 먹은 저녁상 옆에서
어머니가 잘라주시던 참외조각을 깨물며 들었던 이야기다.


우리 외가는 충주 시내에서 20리정도 떨어진 시골마을이었다.
당시 외갓집은 터를 잘 잡고 농사를 지어 다른 집에 비해 넉넉한 편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외할아버지 성품이 워낙 인자하시고 남 돕기를 잘 하시는 터에
지금도 고향에가서 경주손씨네를 얘기 하면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정도로
마을에서 평판이 좋았더랬다.


 때는 외삼촌이 고3이 되는 초봄, 보릿고개가 한창이던 때 였다.

사랑방에서 외할아버지와 같이 잠을 자던 외삼촌은
새벽녘 즈음에 이상한 기척이 느껴져 잠을 깼다.
자리에 누운 채로 눈만 뜨고 들리는 소리에 신경을 집중하면 할 수록
영락없이 누군가가 헛간에서
뒤주 뚜껑을 들추는 소리일 것이란 생각이 나셨단다.

외삼촌은 몸도 다부지고 운동신경이 있는 분이시다.
젊은 혈기에 가만 있지 못하고
이놈을 때려잡으리란 심사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러자 갑자기 주무시는 줄 알았던 외할아버지가
슬며시 손을 뻗어 외삼촌의 옷자락을 잡으시며

"야야. 관두거라."

하시더란다.


외삼촌은 당황하여 서투른 기척을 냈고
그 기척을 들은 도둑은
뒤주에서 쌀을 퍼내던것을 멈추고 후다닥 달음질을 쳤다.
외삼촌이 급히 달려 나갔지만 이미 저만치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황급히 뛰쳐나가는통에 쌀도 제대로 못 챙기고 질질 흘리며 뒤뚱거리는 도둑을
날랜 외삼촌이 그때라도 못잡을 상황이 아니었다.

외삼촌이 곧 뜀박질을 시작하려니까
외할아버지가 사랑방 문지방 밖으로 반만 나와
나즈막한 소리로 호통을 치며
외삼촌을 불러세우시는 것이었다.

외삼촌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호기를 놓친 탓에 분하기도 하여 원망조로

"아부지! 왜 그러세유."

하니까
외할아버지 말씀.


"서른집도 안되는 이 촌구석에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남의 집을 털겄냐.
 또, 한놈이잖어. 퍼간데봤자 얼마나 퍼간다고 호들갑이여!
 게다가 니놈한테 낯짝이라도 비췄어봐라. 이 동네에 발붙이고 살겄냐~!
 자고로 어려울때 생긴 도둑은
 잡는게 아니고 쫓는거여!!"





외할아버지는 내가 5살때 돌아가셨다.
어느날 갑자기 울 어머니가 엉엉 울다 그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누나말 잘 듣고 여 있어. 엄마 외갓집에 좀 갔다 올께"
하시더니 그날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었다.


베로 짠듯한 짧은 중절모에 여유있는 도포를 입고
손잡이가 동그랗게 굽은 지팡이를 짚으시어 약간은 구부정한 걸음으로
파뿌리 같은 흰 수염을 움직여 허허 너털웃음을 지으시던
우리 외할아버지...


이웃끼리 주차문제로 폭행이 벌어지고
 부모자식간에 돈 때문에 칼부림 하고
 부부간에 보험금 노리고 해쳤다는 뉴스를 들을때면

 얼굴도 모르는 배고픈 사람까지 생각하시던
 우리 외할아버지 이야기가 생각난다.

..신통이아빠 님의 글을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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