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9

서울대 85학번 입학동문 시국선언 .........



서울대 85학번들의 시국선언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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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 다니던 동네 형이 있었어요. 뭐 당연히 동네에선 우상과 같은 존재였죠. 서울대 85학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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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기였다고는 해도 부산 변두리 동네에서 서울 법대라면 동네 강아지들도 한번쯤은 우러러보고 지났을 테니까. 86년 여름 방학 때 그 형이 귀향한 길에 전철을 같이 탈 일이 있었습니다. 철없고 멋모르는 고딩이었던 저는 이런 말을 했어요. "이번에 분신자살한 사람들 말이에요. 그거 개죽음 아닌가요. 아니 자기가 옳으면 살아서 싸워야지, 왜 불타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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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자로 데모같은 거하고는 담을 쌓고 지낸다는 정평이 있는 형이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 그 형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어요. 어린 것을 차마 한 대 치지는 못하고 그걸 표정으로 표현했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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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못붙일만큼 두려운 침묵이 지나고 형이 입을 열었지요.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라. 나도 죽을 것 같았으니까. 아니면 누구를 죽일 것 같았으니까. " 나야 뭐 국으로 입을 다물었지만 그 형도 그랬어요.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형은 단 한 마디도 말을 내뱉지 않았으니까. 석고상처럼 굳은 얼굴 그대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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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은 잘 졸업해서 괜찮은 직장에 들어갔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그리고 아까 얘기했지만 운동권같은 거하고도 거리가 멀다고 했고. 하지만 전철 안에서 그 형이 발산했던 냉기는 지금도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열기라고 해도 좋아요. 그때 형의 눈에선 불길이 널름거리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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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여름이었습니다. 그래요 그 해는 김세진 이재호 이동수 등등 되뇌기조차 무거운 이름들이 화염에 휩싸여 사라지던 분신 정국이 휘몰아치던 때입니다. 아울러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여>를 노래했던 서울대 국문과 83학번 고 박혜정이 한강에 몸을 내던진 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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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문학도들은 대부분 그랬겠지만 그녀도 김수영 시인을 무척 좋아했다고 해요. "먼곳에서부터 먼곳으로 내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먼 곳에서)고 노래한 시인의 고통에 공감했기 때문일까요. 그 아픔을 딛고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온갖 식구와 온갖 친구와 온갖 적(敵)들과 함께 적들의 적들과 함께 무한한 연습과 함께" (아픈 몸이) 라고 부르짖었던 목소리에 반해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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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봄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고 박혜정에게나 데모와는 담 쌓았던 동네 형에게나. 방금 전까지 농담 따먹기하고 배를 쥐던 친구가 불덩이가 되어 사라지는 칠성판같은 정국은 범상한 사람들의 턱밑에까지 칼을 들이밀었던 겁니다. "나도 죽을 것 같았고 아니면 누구를 죽일 것 같았던 " 흑과 백이 부딪치고 아와 비아가 작두 위에 선 세월이었겠지요. 독한 마음을 품지 않고서야 그 지독한 시대의 강요로부터 벗어나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은 나날이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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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혜정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다고 해요. 남파간첩을 동생으로 뒀던 허화평 덕에 연좌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긴 했으나 데모하는 딸을 둔 군인 아버지의 목숨은 파리보다 못한 때였죠. 또 그게 아니더라도 군인을 아버님으로 뒀다면 웬만한 남자친구는 전화하기도 무서워하지 않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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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MT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휴학도 하면서 운동을 정리하고 자신의 문학적 꿈을 이뤄 보려고 노력도 했다고 해요. 동짓달 그믐밤같이 날선 흑과 제 몸을 불태워 발하는 백 사이의 회색지대에 남아 보고자 했던 거겠죠. 하지만 86년의 봄은 그러기엔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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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원예과 1학년 고 이동수 학생이 온몸에 불칠을 하고 아크로폴리스로 떨어지던 날 , 눈앞에서 사람이 불타고 있는데 그 시신을 가져가겠다고 경찰이 군홧발소리 드높이 캠퍼스를 울렸습니다. 한 선배는 그날을 그렇게 기억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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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도서관에 들어와서 울부짖었어. 사람이 죽었다 이 개새끼들아. 나와 싸우자. 안 싸우겠으면 나와서 구경이라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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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소리를 듣고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사람도 있었겠지요. 제 생각엔 그들은 이미 회색을 넘어 불타 죽은 사람의 반대편에서 전투를 수행 중인 사람들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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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선배는 책보 싸들고 하숙방으로 가서 술만 먹었다고 해요. 괴로운 도피였겠지요. 그날 박혜정은 울면서 돌을 들었습니다. 용기 없음을 스스로 질책하던 한 젊은이의 폭발임과 동시에 그녀가 참전할 수 밖에 없었던 전쟁이 벌어진 겁니다. 그날 그녀는 평생 처음 외박을 하고 며칠 뒤 한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그녀의 유서를 다시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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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언어들속에 나의 보잘 것 없는 한 마디가 보태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그러나 다른 숱한 언어가 그 인간의 것이듯, 나의 언어는 나의 것으로, 나는 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겠지.~야, 뭘 할 수 있겠니. 내가 지긋지긋하게 싫더라도 어쩔 수 없음을 네가 모르지 않을진데 요구하지마, 요구하지마! 강요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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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저는 이걸 회색으로 남고 싶어하던, 누구에 대항하고 누구를 타격하고 누구를 죽여야 하는 전쟁에 휘말리기 싫어하던 한 젊은이, 그러나 그 선택의 벼랑이 발 앞에 들이닥친 한 젊은이의 절규로, 주정으로, 악다구니로 들립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데? 그게 옳은 길인 건 알겠어. 왜 내가 해야 되는데?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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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이 아름다운 모오든 것들. 괴로운 척, 괴로워 하는 척 하지 말 것. 소주 몇 잔에 취한 척도 말고 사랑하는 척. 그래 이게 가장 위대한 기만이지. 사랑하는 척. 죽을 수 있는 척. 왜 죽을 수 없을까? 왜 죽지 않을까? 자살하지 못하는 건, 자살할 이유가 뚜렷한데 않는 건 비겁하지만 자살은 뭔가 파렴치하다. 함께 괴로워 하다가 함께 절망하다가 혼자 빠져버리다니. 혼자 자살로 도피해 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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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에게 던지는 불평 같기도 하고 김세진과 이재호와 이동수에게 던지는 비명 같기도 합니다. 자살할 이유가 뚜렷한데 않는 건 비겁하다고 선언하면서도 그 죽음을 원망하니까요. 차라리 당신은 죽어서 속편하지 않느냐고, 당신은 이제 이 고통과 절망에서는 차라리 벗어나지 않았냐고. 결국 당신들이 떠난 전선을 지켜야 하는 건 소주 몇 잔에 취한 척 괴로운 척 하기도 버거운 내가 아니냐고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러나 그 다음 줄부터 그녀의 유서는 별안간 강경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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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省하지 않는 삶. 反省하기 두려운 삶. 反省은 무섭다. 그래서 뻔뻔스럽다. 낯짝 두꺼워지는 ....아파하면서 살아갈 용기 없는 자, 부끄럽게 죽을 것. 살아감의 아픔을 함께 할 자신 없는 자. 부끄러운 삶일 뿐 아니라 죄지음이다. 절망과 무기력, 이땅의 없는 자 억눌린 자 부당하게 빼앗김의 방관, 덧보태어 함께 빼앗음의 죄.더 이상 죄지음을 빚짐을 감당할 수 없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부끄럽다. 사랑하지 못했던 빚 갚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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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학생이 학생회관 4층에서 불덩이가 되어 떨어져 살이 타들어갈 때 그 냄새를 맡으면서도 법전을 파고들고 토플 단어를 외웠던 낯짝 두꺼운 뻔뻔함을 가질 수도 없고, 그 죽음에 아파하면서 몸 바쳐 살 용기는 부족한 자신. 숱한 사람들의 목숨이 바쳐지고 그 목숨값으로 이뤄내는 성과에 대하여 무임으로 승차할 깜냥은 커녕, 그것을 햠께 빼앗는 죄로 규정했던 젊은 여성의 발길은 결국 한강 다리로 향하고 말았어요. 한강 다리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죽을만큼 괴로와했던 수많은 회색지대의 청년들은 그 죽음에 결코 초연할 수 없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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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왜 시덥잖은 옛날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물을 때가 되었지요 아마. 식상할 대로 식상하고 쉰내날 대로 쉰내나는 80년대의 아우라를 굳이 되새김질할 생각은 없습니다. 슬퍼서 그렇습니다. 그때 피지도 못하고 타버리 사람들, 숨끊어진 사람들, 그 우주들이 안타까워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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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참혹했던 세월을 거쳐,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더랬는데 겨우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했다고 고백해야 하는 오늘이 참담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이런데, 지금은 얼굴도 가물가물한 서울대 85학번 동네 형을 비롯해서 그 동기들의 마음은 어떻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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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그 마음을 읽게 해 주신 서울대학교 85학번 543분께 감사드립니다. 글자 한 자 한 자 읽으며 구겨진 마음을 다림질합니다. 우리나라 이렇게 저질스런 나라 아니었습니다. 이런 비참한 나락에 빠진 책임 또한 우리 세대 모두가 짊어져야 할 것이로되 우리를 그 절망의 늪에서 구할 것은 적어도 우리는 주저앉지 않는다는 믿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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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省하지 않는 삶. 反省하기 두려운 삶. 反省은 무섭다. 그래서 뻔뻔스럽다. 낯짝 두꺼워지는....."이라고 가슴을 쳤던 한 여학생을 떠올리며 다시금 선언문을 읽어내립니다.
11월 12일 광화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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